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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그림 없는 그림 일기

지구이 2022. 10. 7. 02:26

1.

 하루 10시간 넘게 문제를 고민하며 프로그래밍 대회를 준비한 때가 18년이니, 벌써 4년 반이나 지나버렸습니다. 그 4년 반동안 무엇을 했냐 하면, 프로그래밍 대회에 시간을 투자하느라 미룬 공부나 취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나열만 하자면, 석사 학위, CTF, 딥러닝, 그래픽스, 아두이노, 모델링, 유니티, 등등. 게임도 엄청 하고있구요.

 

 최근 들어서는 그림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고, 그림을 배워두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7살부터 지금까지 이과 공부만 하던 제가 이과랑은 단 하나도 접점이 없는 그림같은 것을 잘 할 수 있겠냐 하면 잘 모르겠고, 주변에도 이과 친구들밖에 없어서 완전 독학으로, 좋진 않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공부해도 전혀 변화가 없는 것 같으면 이것도 그만두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종 목표는 제 그림이 픽시브에서 북마크 1천을 찍는 것입니다.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제가 상상한 것을 어색하지 않고,매력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물론 실력에 대한 욕심이 없어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제 그림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싶습니다. 지금은 평균 북마크 개수가 한자리 정도이고, 제가 봐도 한참 모자른 그림들이니까,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이번에는 그림 공부를 하면서 생각한 것들에 대해 적어두려고 합니다. 제가 그림을 잘 그렸다면 어떻게 공부했나 정리를 하면서 쓰겠지만, 못 그리니 생각의 흐름대로 적어보고, 가능하다면 먼 미래의 저에게 정리를 맡기겠습니다.

 

2.

 제가 그림 공부를 시작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잘 그린 그림의 정의가 무엇인가?" 일 것 같습니다. 이과 공부를 할 때는 항상 참인 명제만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논리 없이 답을 해야 하는 명제에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다가 답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과라면 저 질문에 대한 답이 없으면 불안해 하겠죠?

 

 제 생각에,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그림 공부의 과정인 것 같습니다. 그림 공부를 하기 전에는 예쁘고 멋있는 그림을 좋아했고, 그림을 많이 보면서 "주제가 확실히 전달되며, 모든 요소가 주제 전달에 도움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면, 지금 와서는 "색감이 촌스럽지 않고 현실감 있어, 보는 사람이 편안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답이 변하고 목표가 바뀌면서 새로운 것을 공부하게 되는 원동력을 얻고 있습니다.

 

 까먹기 전에 "지금의 답변"을 어떻게 정하는 것이 좋을지 적어보면, 먼저 내가 그리는 그림은 이랬으면 좋겠다(위압감을 주고 싶다, 예쁜 그림을 그리고 싶다, ...)는 생각을 한두 문장으로 정리하고 그것을 목표로 공부를 합니다. 공부도 하고 그림을 여럿 그려본 뒤, 그린 그림이 잘 그리지 않은 것 같다면, 잘 그린 그림들을 보면서 "내 그림이 이랬으면 잘 그려질 것 같다"라고 생각하며 목표를 새로 정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목표는 내가 그린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이 되는 것이지, "지금의 답변"이 최종 목표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3.

 기본기 부족은, 적어도 그림에서는, 당사자가 눈치채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스케치, 선따기, 밑색, 채색 순으로 요약하면, 기본기가 기여하는 단계는 스케치(형태)와 밑색(색감)인 것 같고, 선따기와 채색은 테크닉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림은 모든 과정이 끝난 완성본을 평가하다보니, 스케치와 밑색이 틀린 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지도자가 있으면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독학이다보니 더 어려운 것도 있구요.

 

 예전부터 디테일한 묘사가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잘 그린 그림을 많이 봤는데, 그것을 모작하면 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기본기가 부족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가설을 세웠습니다. 특히, 색감에 대해서는 정말 하나도 모르겠어서 그것이 문제일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림공부를 하고, 예술고와 미대를 거치면서 공부를 한 분들에게는 색이 익숙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과가 수식을 접하는 것과 느낌이 비슷할 것 같습니다. 채색이 촌스럽지 않으려면 색이 익숙해지는 것이 먼저일 것 같은데, 아직은 감이 잘 잡히진 않습니다. 아직은 채도같은 것들이 10%정도 변하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하니까요.

 

4.

 저는 새로운 것을 쉽게 시작하고 쉽게 그만두는 습관이 있다보니, 새로운 시도를 모두 기록하진 않는 편입니다. 기록으로 남긴 것을 접게 되면 죄책감 같은 것이 느껴져서, 차라리 기록하지 않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림 공부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그림 공부만큼은 쉽게 그만 두지 않으려는 다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중 일은 절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제가 그린 그림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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