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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삶에서 저를 가장 크게 바꾼 사건을 골라보라 하면 망설이지 않고 ICPC에 엮인 일련의 사건들을 얘기할 정도로, 제게 ICPC는 매우 특별한 존재입니다. 저는 15년 월파와 18년 월파를 거치면서 생각과 성격이 매우 크게 변했(다고 생각하)고, 이번 글은 그 중 하나인 "대회에서 긴장감을 제어하는 방법"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대회가 1주일 남은 시점에서, 공부를 더 하는 것도 좋지만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 지 준비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중요한 순간에 어떻게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있는가"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긴장해서 일을 망치기도 합니다. 제가 월클에는 한참 못 미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저만의 긴장을 제어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월클급에는 한참 못미치는 사람의 방법을 한 번 적어보려고 합니다. 사람마다 성격과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제 방법이 모두에게 먹히지는 않겠지만, 힌트로라도 사용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시간을 꽤 오래 들여 글을 쓰는데, 이번 글은 지스타 가는 KTX 안에서 2시간에 날려 쓴 글이라 평소 글과는 온도가 다릅니다. 올해도 ICPC에 기업 발표를 하는데 발표 전까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 급하게나마 써 봅니다. 그러고보니 그러면 다음 글은 자연스럽게 지스타 후기 글이 되겠군요.

 

1. 

 "실전을 연습처럼, 연습을 실전처럼" 이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긴장감으로 대회를 망치지 않도록 연습하는 방법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많은 내용이 축약되어 있어 모든 의미가 전달되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에서 시작해서 하나씩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1) "연습과 실전에서 완벽하게 같은 결과가 나왔다면 실전이라서 망한 건 아니다."

 

이건 논쟁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연습보다 잘하는 실전은 어디까지나 운의 영역이고 기도로밖에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저도 대회 전에는 제게 쉬운 문제가 나와달라고 기도하기도 하구요.

 

 

2) "연습과 실전을 동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연습에서는 실전에서 하는 긴장의 절반만큼은 긴장감을 가지고, 실전은 긴장감을 절반으로 줄여보자."

 

이건 제가 긴장감을 제어하는 방법입니다. 연습을 더 긴장하고, 실전을 덜 긴장하면 사이에서 만나긴 하겠죠. 연습에서 긴장을 하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이 연습을 잘 하면 오늘은 치팅데이다" 같은 작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과연 실전에서도 "이 실전을 잘 하면 오늘은 치팅데이다" 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는 "이 실전을 잘 하면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일텐데 말이죠.

 

이 정도면 최면에 걸린 거 아니면 어림도 없다고 생각하셨나요? 그래서 제가 찾은 방법은 자기최면입니다. 

 

 

3) "실전에 들어가는 순간만큼은 자기최면으로 목표를 바꾼다."

 

자기최면, 어떻게 보면 자신을 속이는 행동은 우둔하고 멍청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대회를 잘하기 위해 나를 속일 수 있다면 기꺼이 속아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회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기 때문에 나에게 대회를 잘하고 싶은게 아니라고 자기최면을 건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이것이 제 방법입니다.

 

17년 ICPC에서는, "나는 대회가 어떻게 되어도 1년 동안 최선을 다했고, 이미 만족할 만큼 성장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내 행동은 거시적으로 보면 세계에 매우 작은 영향을 줄 뿐이다."

물론 Plan B를 만들어 놓거나 어떻게 되든 상관 없는 환경을 구성하는 방법도 많이 사용하지만, 회피가 불가능하면 약한 자기최면을 걸기도 합니다. 추가로 ICPC 회장에서 기업 발표하는 것도 긴장되긴 합니다만, 저도 대회 때 기업 발표는 안 들었기 때문에, 어떻게 되든 나쁜 말은 안 듣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발표를 합니다. 물론 발표 준비는 최선을 다해야겠지만요.

 

2.

 여기까지 정리하고 보니,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만, 일련의 행위가 종교와 매우 비슷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마음의 안정이 필요한 순간에 신에게 기도하고 의지하는 것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다면 의지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심지어 자기최면이라는 번거롭고 힘든 방법을 쓰지 않고도 쉽게 안정을 찾을 수 있으니 어떻게 보면 더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신은 완벽한 존재인데, 존재하지 않는 신은 결함이 있으니 신은 존재한다." 철학 시간에 들은 내용인데, 처음 들을 때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약간 생각이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면 논리적으로 반박해서 마음을 꺾을 필요가 있을까요? 논리가 중요한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떨어지는 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입니다. 별똥별은 보기도 어렵지만 매우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내가 소원을 빌 준비를 해야만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에 소원을 빌 수 있다는 의미죠. 소원을 항상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을 정도로 노력하는 모습이, 떨어지는 별에 소원을 비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해석을 하면 재밌지 않나요. 

 

 최근 스텔라 소라라는 게임도 하고 있는데, 마침 서론에 관련 있는,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어서 가져와 봅니다.

 

사람은 자신의 약한 마음을 지키려고……
모두 저 별에 소원을 빌지.
왜냐면, 그렇게 해야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나는 열심히 했어. 하지만 별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을 뿐이야."
……그렇게 변명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그저 소원을 비는 것만으로 바람이 이루어진다는, 그런 형편 좋은 얘기는 없어.
그런데도 어리석고 가여운 우리는, 그렇게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

 

-1.

 여기까지가 제 이야기입니다. 한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실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만을 믿어야 하고, 한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신을 믿어야 한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어리석고 가여운 우리는, 그렇게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

 

마지막으로, 다음 주 대회도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라고, 대회장에서 웃는 얼굴이 많이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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