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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터널 리턴이랑 팩토리오 언급하던 때가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8개월이나 지났습니다. 그동안 아무것도 안했냐 하면 그 정도는 아니고, 괜찮은 취미 없나 여러가지 찾아가며 살고 있습니다. ZBrush로 3D 모델링도 해봤고, 피아노 학원을 무지성으로 등록해서 조금 배워보기도 했습니다. 하고 있는 게임 수가 줄어든 것은 아니라서 취미에 충분한 시간을 쓰고 있는지는 의문이 있지만, 그래도 저한테 맞는 취미인지는 알 정도로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시절에, 모바일 게임(확산성 밀리언 아서?) 캐릭터를 따라 그리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롤이 훨씬 재밌기도 했고 정올이나 학교 공부하느라 그림을 많이 그리진 못했지만, 그래도 재밌게 그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생과 대학원생, 회사원이 되기까지 그림을 매우 가끔식이지만 꾸준히 그려왔던 것 같습니다. 제 감으로는 1년에 한 장 이상은 꾸준히 그려오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평생 취미로 삼아도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온 상태입니다.
 
 최근에 그림을 그려보니 예상보다 재밌어서 꾸준히 그려보고 있습니다. 3년 전에 신티크 프로 16을 지른 이후로 그림을 오래 접었다가, 다시 시작한 지 3달 정도 됐습니다. 아직은 실력이 뛰어나지 않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완성한 그림은 픽시브에 익명으로만 올리고 있습니다. 익명으로 그림을 올렸을 때 북마크 수가 3자리 이상 나올 정도의 퀄리티면 제 필명을 쓰고 싶은데, 아직은 20을 넘기지 못해서 공개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림이 예쁘거나 하는 좋은 반응을 얻으면 동기부여가 되겠지만 굳이 필명을 쓰면서 동기를 얻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림 10장 올린 익명 계정의 총 리액션 수

 
이번 글은 왜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나, 그리고 익명 계정은 왜 쓰는지나 언제 공개할 지 같은 것들을 적당히 풀어 볼 생각입니다.
 
 
1.
 취업 이전에는 이력서에 한 줄을 더 적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해서 저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없었다면, 회사를 다닌 이후에는 저에 대해 더 잘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취업 이전까지는 다양한 취미를 시도해 볼 시간이 없었지만, 취업 이후가 되서야 다양한 취미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이걸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야 시작한다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인생이 이렇게 되어버려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가 비주얼스노우 증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비주얼스노우만 있는 건 아니고, 비문증, 잔상, 이명도 있습니다. 앞서 포스팅에도 언급했던 블루필드 내쉬 현상도 비주얼스노우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저는 비주얼스노우 증상을 "노이즈가 나오고 있는 TV 화면을 불투명도 25% 정도로 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제가 비주얼스노우가 없어본 적이 없어서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저는 비주얼스노우 증상이 후전적으로 온 경우가 아니라서 가끔 기분이 나빠지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인터넷에서 비주얼스노우가 후천적으로 오면 매우 힘들다는 글을 여럿 봤는데 그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이 증상이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부분이 하나 있다면, 흰색 배경에 검은색 글씨나 선화가 있으면 시각이 왜곡되어 집중이 잘 안됩니다. 흰색에 단색이라 노이즈도 엄청 잘 보여서 글씨와 노이즈를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아예 못 읽을 정도는 아니지만 시선을 고정해야만 노이즈가 아닌 부분을 알 수 있어서 불편함이 있습니다.
 
 이런 점을 알고 나서 억울했던 점은, 제가 옛날부터 실수를 많이 했는데 원인이 이것인 것 같습니다. 시험을 보면 항상 흰 종이에 검은 글씨가 적혀 있고, 답안지도 흰색에 검은 펜으로 적어야 하고, 여러모로 비주얼스노우 증상이 있으면 잘못 보기 쉬운 환경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래밍 대회 준비할 때도 맞춤형 세팅을 했으면 더 나았을 것 같긴 합니다만 이건 아쉽지는 않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중에는 백지를 두려워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저는 비주얼스노우 증상이 있어서 실제로 백지를 보기 어려웠습니다. 원인을 추측할 수 있게 되니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고, 몇 가지는 효과가 있어서 그림을 다시 그려보고 있습니다. 해결법 중 하나는 백지 대신 회색 배경에 적당한 노이즈를 섞은 캔버스에서 그리는 것인데, 눈도 안아프고 비주얼스노우도 가려져서 전보다 편한하게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이즈는 "필터 > 필터 갤러리" 클릭 후, "텍스쳐 > 텍스쳐화", 옵션은 "사암, 비율 67%, 부조 2px"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튼 해결이 됐으니 그림을 오래 그릴 수 있게 되었고 이제 그림 실력만 따라와주면 정말 좋을 것 같지만, 아직은 멀은 것 같습니다. 

 

백지 (아님)

 


2.

 픽시브 익명 계정을 쓰는 이유는, 제가 만족할 만한 그림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계정으로 필명도 쓰고, 홍보도 하고, 블로그에 포스팅도 하면 저를 아는 사람들이 한 번씩 들르겠지만, 잘 그리진 않은 그림을 굳이 보여주고 다니고 싶지는 않습니다. 픽시브 그림을 조사해보니 북마크 100개 정도 되는 그림이면 제 마음에 드는 것 같아서, 기준이 그렇게 됐습니다.


 픽시브에 올라온 잘 그린 그림들을 보다가 제 그림을 보면 차이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다른지는 당연하게도 잘 모르겠습니다. 알았다면 이미 만족할 만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겠죠. 그림 강의들을 많이 보면서 이론은 어느 정도 습득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론을 응용하기에는 아직 이해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공부량보다는 제 생각대로 그려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깊게 생각 안하고 그림만 열심히 그려보고 있습니다. 3주에 1장은 부족한가 싶기도 하지만, 회사를 다니고 있기도 하고, 제가 한 가지에 시간을 오래 쓰는 것을 선호하기도 해서 괜찮은가 싶기도 합니다.

 

 처음 그림 한두개 올리던 때는 반응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으면 실망하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는 별 생각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림이 생업이 아니다보니 목숨을 걸 필요가 없기도 하고, 그림 말고도 잘 하는 것들이 있다 보니 과몰입을 안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이 생업인 분들은 이런 점은 힘들겠다는 생각도 가끔은 하고 있습니다. 제 본직인 코딩은 작품의 멋을 알아보는 사람이 그림보다는 훨씬 적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하지만, 대신 관심과 무관하게 먹고 살 수 있는 점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코드에도 그림과 비슷한 수준의 예술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설명하기에는 공간이 없어 다음 포스팅으로 넘겨봅니다.)

 

 나중에, 꽤 반응이 좋은 그림을 그리게 되면 다음 목표를 정하면서 포스팅을 한 번 더 하고 싶습니다. 8년 전 지구이 프로필 사진은 제가 그렸던 건데, 대충 스케치하고 색을 입혀봤더니 느낌이 꽤 나쁘지 않아서 계속 쓰고 있습니다. 지금 그림을 보면 예전 그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림 그린다면서 그림을 아예 안올리는 건 아깝기도 해서, 지금 스케치 중인 그림 잘라서 올려봅니다.

 

끝.

지구이 프로필 사진 (좌), 간단한 스케치 일부 (우)

 

 

 

P.S.
 하고 싶은 말은 이것보다 더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쓰다 보니 다 없어지고 이것만 남았네요. 제가 지금은 생성형 ai, 특히 그림과 3d 물체를 생성하는 ai를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고, 그림 관련으로 포스팅을 할 때마다 ai로 뭔가 많은 말을 하고 싶은데,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무소속 대학생일때는 말하고 싶은 건 다 적었는데, 지금은 잃을 것도 많고 해서 조심스러워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전에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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